HAIR BOX
책, 향수 "일그러진 외로움" 본문
집에 즐비해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다 또 한권, 읽고싶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바로 향수. 예전 무심히 흘려 보냈던 책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한다.
향수역시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인데, 책을 읽고난 후 바로 영화를 보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일정 기간 텀을 두고 두 가지 다 보거나, 혹은 정말 좋아하는─영화 혹은 소설책─ 것 하나만 보는게 더 정신건강에 좋다. 무얼 먼저 보던, 전자는 제대로 즐길 수 있지만, 후자는 무슨 공부하는 기분까지 든다.
소설에서는 몇 천 단어─정확하게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이 나와야 한다고 하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은 단어들의 수에서 월등하다. 열거되는 단어들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데, 보통 향수 재료에 관한 이야기다. 어학사전을 뒤져 가며 소설을 읽었다. 그랬더니,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적인 단어들도 있었다. 어학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읽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나는 모든 소설의 도입부가 너무 지루하다. 아무리 잘 된 소설, 많이 팔린 소설이라 해도 도입부가 지루한 것들은 매 한가지. 그렇지만 지루한 도입부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향수도 그랬다. 책을 도무지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어려운 단어들이 꽤 나온다고 해도 술술 잘만 읽힌다. "내 어휘력이 이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소설 향수는 어느 천재적인 외톨이의 일생을 다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법한 외로움도.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묘사 부분에서 불현듯 노틀담의 곱추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그 자신만의 주관적인 방법으로 그 외로움과 싸워 나간다. 그것만이 진리라 믿는다. 아니,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믿는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고, 모두가 그랬던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 모두의 인생은 외로움과의 싸움 아닐까? 어느 부분적인 측면만 본다면 말이다.
그릇된 일 임에도 불구하고 그르누이는 자신의 소신대로 모든 일을 행한다. 사랑받기 위해서. 느끼기 위해서.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르누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사랑했고, 결국 그 방법은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나는 평소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은가.